한국 정부는 최근 COVID-19의 전세계적 확산에 따른 조치로서 한국전쟁 참전국에 대한 방역 물품 지원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웃나라 일본에도 방역 물품을 지원할 생각이 있음을 내비쳤으나 “일본의 공식적인 요청이 없는 이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당연한 반응이다. 어느 나라나 대상국의 요청없이 지원할 순 없다. 하지만 정부가 주저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 있다. 양국의 과거사 갈등이 수출규제와 비자제한이라는 현실적 경제조치로까지 확대된 상황 탓으로 보인다. 작년부터 미해결인 채 남아있는 거센 갈등이 일본에 대해 먼저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정부내 인식과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이미 한일 언론들에서는 일본 지자체들이 주한 일본대사관 및 영사관에 대해 방역 물품 지원 요청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현재 한국과 일본 양국의 코로나 대처 모습은 대조적이다. 한국은 지난 석 달의 사투 끝에 하루 확진자를 10명 안팎으로 줄이는데 성공한 반면, 일본은 여전히 하루 수백명 씩 확진자가 느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서는 방호복이 모자라 시장이 나서서 우비를 지원해달라고 하는가 하면, 인력이 모자라 이미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은 간호사를 현장으로 투입하는 상황에 치닫고 있다. 병상, 인력, 물품, 장비 등이 전국적으로 모자라 “이미 의료가 붕괴됐다”는 지적이 의료 현장 안팎에서 들려온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소프트뱅크 손정의(손마사요시)회장의 트위터에는 일본 현(県)지사들이 앞다퉈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일본의 열악한 현실을 한국 정부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방역 물품 지원 뿐이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쌓았던 의료진의 파견과 각종 방역 노하우 전수를 적극 타진해야 한다.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인도주의적 측면이다. 일본 시민은 물론 한국 교민들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일본 국내 여론의 변화다. 아베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 대한 실망감이 널리 퍼지면서 강한 혐한(嫌韓) 정서를 뒤엎는 시도는 해볼 적기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의 국익이다. 일본 코로나19 확산세가 빨리 진정돼야 한일간의 경제적, 인적 교류를 재개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ILO)”이다. 이웃나라와 손을 잡고 이겨내야 한다. 지금이 통 크고 적극적인 ‘방역외교’를 펼치는 최고의 기회인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아베 정부의 호응 없이 한국 정부의 지원은 현실화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아베 총리 또한 전향적인 모습을 취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일본 국내 의료붕괴 상황을 초래한 책임을 직시하고, 각 지자체가 한국에 당장 필요로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취합해야 한다. 그리고 창구를 일원화하고 한국 정부와 진지한 논의에 임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상간 핫라인을 통해 적극적인 의사를 밝히고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문대통령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과거사 문제와 그 이외의 경제 및 외교문제를 분리하고 진행하는 ‘투트랙’을 그동안 거듭 강조해왔다. 이번에야 말로 이 원칙을 내세워 적극적인 대일 외교에 나설 때다.
코로나19 사태는 국제질서의 재편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식인들은 지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을 일본 사회에서 뚝하면 튀어나오는 ‘종주국과 피식민지배국’의 프레임을 완전히 종식시키는 적기로 삼아야 한다. 일본 사회는 이미 충분히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의 성공을 느끼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용단을 통해 사람도 살리고 미래도 살리는 말그대로 ‘윈-윈’의 한일관계가 현실화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서태교)